- 제 11 강 -
*** 깨달음으로 가는 새로운 방편 (1-1) ***
9강, 10강에서 마음의 구조와 작용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수행할 때 마음이 타파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수행은 오직 ‘정념正念’으로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할 때 감각(촉觸)과 생각(상相)으로 하는 것은 내 생각(아상我相)이 들어가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 정념의 성질
1) 깊게 본다.
2) 알아차린다.
3) 대상(경계)에 끌려가지 않는다(집착하지 않는다, 물들지 않는다).
4) 마음 챙김.
5) 깨어있음.
수행할 때는 한마음(일념一念)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마음이 하나의 경지에 정지하여 흐트러짐이 없는(선정禪定) 상태인 '정定(지止, 사마타)'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인 '혜慧(관觀, 위빠사나)'를 함께 닦아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을 `정혜쌍수定慧雙修’ 또는 `지관쌍수止觀雙修’라고 합니다.
정념으로 하는 수행이나 정혜를 함께 닦는 수행은 본질적으로 같은 수행의 방편입니다. 정定을 닦는 수행은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이므로 어떠한 경계(대상)에도 머무름이 없는 적적寂寂한 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삼매에 드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수행이 정定에 치우치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멍함에 빠지거나, 편안함에 머무르게 되어 마치 목석과 같은 공허한 무기無記에 떨어지는 데 이것을 `혼침昏沈’에 빠졌다고 합니다.
혜慧를 닦는 수행은 자세히 살펴서 사물의 본질을 깨달아 지혜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한결같이 깨어있는 밝고 맑은 성성惺惺한 마음을 말합니다. 혜慧에 치우치면 마음이 산란하게 되며, 분별하고 차별하기 때문에 분열과 대립하게 만드는데 이것을 ‘도거掉擧’에 빠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정定에도 치우치지 말고 혜慧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바른 수행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적적성성寂寂惺惺’,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본성(청정심, 본래심)은 적적(정定, 지止)과 성성(혜慧, 관觀)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모습으로 있기 때문에
`소소영영昭昭靈靈(한없이 밝고 신령스럽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본래 마음(본성)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그 마음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또는 `무심無心’이라 하고 본래심의 성질이 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계발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현악기의 줄을 너무 세게 조이거나 너무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나지 않으니 적당하게 조여야 제대로 소리가 나는 것처럼 혼침이 생겼을 때 혼침昏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지나치게 혜慧에 치우치면 도거掉擧가 생길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적당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도거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수행 방편의 공통점은 집중에 의한 깨달음(견성見性)입니다. 깨달음은 집중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어떻게 집중하느냐의 문제는 매우중요 합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삼매에 드는 것을 수행의 필수적인 요건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중의 최고경지인 삼매(선정)속에서는 생리적으로 인식의 기능은 살아있으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차단됩니다.
삼매에 들게 되면 호흡은 가늘고 길어져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있을 뿐 거의 호흡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로 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거의 없으므로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죽지 않으며,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게 됩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의도적인 삼매 속에서는 일상의 생활도 불가능하며 견성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삼매에 드는 과정에 뇌의 생리적인 현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마구니 장애(착각현상, 수행에 의한 부작용)가 있어 도중에 수행을 포기하거나 착각도인(외도外道)이 생기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의도적으로 삼매에 드는 수행은 조용한 별도의 장소가 있어야 하며, 삼매에 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깊은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통계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견성이 일어나는 것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원리를 깨닫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이 하나에 몰입되는 상태가 끊어지지 않은 가운데 바깥 경계(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 와 부딪히면서 문득 느낌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삼매 속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생활 삼매). 따라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차단되어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오지 못하는 의도적인 삼매 상태에서는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견성은 할 수 없습니다.
견성을 할 때의 느낌은 촉감(육체적인 감각, 내 생각이 들어감)과 같은 느낌이 아니라 아무런 인식작용이 없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시절인연時節因緣; 때가 되어 인연이 합해 지는 것.) 정신적인 느낌(기분)을 말합니다. 이 느낌에 대해서는 말로 다 표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직접 체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http://blog.naver.com/yhaesan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 제 14 강 - * 본질(체體)과 현상(상相, 용用)의 원리 (2-2) * (0) | 2014.02.04 |
|---|---|
| [스크랩] - 제 11 강 - * 깨달음으로 가는 새로운 방편 (1-2) * (0) | 2013.12.13 |
| [스크랩] 11/27[水]...3색 (0) | 2013.11.29 |
| [스크랩] - 제 10 강 - *** 마음의 구조와 작용 (2-3) *** (0) | 2013.11.29 |
| [스크랩] - 제 10 강 - *** 마음의 구조와 작용 (2-2) *** (0) | 2013.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