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 강 -
*** 마음의 구조와 작용 (2-3) ***
<양자물리학과 깨달음의 세계>
이와 같이 마음의 구조와 수행의 구조는 같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편의상 세 마음으로 구분하였으나, 하나의 마음인 것과 같이 중생의 마음과 깨달은 자의 마음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에 함께하고 있으며, 다만 그 작용만 다를 뿐입니다.
수행자가 돈오에 이르게 되면 지금까지는 중생의 속성인 ‘나’라는 생각으로 살던 미혹하고(미迷) 망령된(망妄) 마음이 제거됨으로써 ‘모두는 하나다.’라는 원리를 확실히 알게 되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나의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되어 나와 관련된 것만을 이익 되게 하던 삶에서 차별 없이 그대로 평등한 본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 조건 없이 나누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이미 다 마치는 것이 되므로 이제부터는 오직 모두를 위해서 살아가는 진정한 주인공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실천하는 나눔의 삶은 ‘해야지!’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하는 나눔이 아니라 마치 호흡을 하는 것과 같이 아무런 인식이 없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본분사本分事’로서 그냥 하는 것, 즉 무심無心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위에서 말한 마음의 구조와 수행(자기계발)의 구조를 살펴보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 때문에 모든 일이 순리(원리, 진리)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잘못 되는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내 생각만 없애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결론입니다. 마음의 속성은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있기 때문에 어떠한 마음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무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일어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용심법用心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행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겉으로 나타나는 말과 행동은 반드시 그 과보를 남기게 되며 이것을 삶의 찌꺼기, 즉 업業이라고 합니다. 한번 지은 업은 8아뢰야식에 미래의 종자로서 저장되기 때문에 절대로 그냥 없어지지는 않으므로 반드시 미래의 일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영향을 받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업이 다시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과거에 지은 업의 영향을 받는 것을 ‘운명’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운명이란? 과거(전생)에 지은 업이 아뢰야식에 종자로 남아 있다가 현재(금생)에 나아갈 길을 정해주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는 없으나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과보가 새롭게 결정됩니다. 따라서 과거로 인해서 주어지는 여건(운명)의 힘보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운명은 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되돌려 받는 자업자득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이고 선업을 열심히 쌓으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운명입니다. 따라서 운명이라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과 같아서 세상에 이것보다 더 분명한 것도 없습니다. 이 원리를 알면 운명론과 같은 것에 공연히 끌려 다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게 됩니다. 운명론도 모자라서 피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히면 숙명론을 말하기도 하는데, 숙명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업에 의한 윤회의 원리를 숙명론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잘못 알고 있는 일이며, 만약에 숙명론이 있다면 수행을 통한 자기계발도 불가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철저하게 자업자득으로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은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말입니다.
마음(識식)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6근根(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이 경계(대상: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를 만나서 생기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으면 마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경계(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르므로 각기 다른 마음이 됩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른 것은 바로 각자의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업業)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나의 세상이나 저마다 업식(알음알이, 지식, 무명)이 달라서 저마다의 세상을 만들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부처님의 말씀에도 천국(극락)과 지옥은 너의 마음속에 있다고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천국이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지옥이 되고 맙니다. 그 누구도 상대방을 만족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 준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바라는 마음(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족은 오직 자기 스스로 만족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6의식과 7말나식에서 만들어진 찌꺼기(업종자)가 8아뢰야식(창고, 업장業藏)에 저장되고 이것은 미래의 일에 적극적인 간섭을 하게 되어 또 다른 결과(업業)를 낳게 됩니다. 과거에 아무리 나쁜 일을 많이 하였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공부하여 8아뢰야식에 끼어 있는 때(업業)를 지워 본래의 깨끗한 마음을 드러내면 누구라도 도道(선禪)를 이룰 수 있으며 이것을 가리켜 ‘자기를 바꾸었다.’ 또는 ‘참 나(진아眞我)를 찾았다.’라고 하는데, 결국 ‘모두 하나 되는 것(불이不二)’을 이르는 말이고 하나 되었음을 증명하는 길은 오직 ‘조건 없이 나누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입니다.
선善의 종자가 많은 사람은 악惡을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나, 반대로 악의 종자가 많은 사람은 악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고 선을 보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선근善根의 종자를 많이 심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을 통해서 자기를 바꾸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지혜로운 마음으로 모두를 이익 되게 하는 꼭 필요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의 일을 어떤 마음(생각)으로 실천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 자기를 계발하는 공부는 깊게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부간에 거의 매일 다투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지만 왜 싸우면서 살고 있는지 그 원인을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혹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고칠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싸움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각자 깊이 사유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공의 비결도 여기에 있고, 행복의 시작도 바로 이렇게 함으로써 얻어지게 됩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yhae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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