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 강 -
*** 마음의 구조와 작용 (1-2) ***
<양자물리학과 깨달음의 세계>
누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개념)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이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나 이 말은 매우 잘못된 의
미의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개념은 현상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에 본질을 보
지 못하므로 허상을 실상으로 착각하게 되어 자칫하면 제 잘난 맛에 사는 것
이 아니라 제멋대로 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가치관이 오로
지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있어서 쾌락에 빠지거나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는 것
은 이러한 것들이 원인입니다.
사람의 마음처럼 오묘하고 불가사의한 것은 없습니다. 우주 만물을 있는 모습
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마음(생각)으로 헤아려 보기 때문에 마음
이 만들었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고 하며, 이것은 같은 것을 보고도 인식하
는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진 지식(알음알이), 습관 등 과거로부터 배워 온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며,
이것을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업식業識(업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대해서는 현대 심리학과 철학에서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나 자기를
계발하는 방법(마음경영법)으로는 깨달음의 세계의 ‘유식론唯識論’에 근본적
으로 보다 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
하겠습니다.
유식이란? 정신과 물질 등 내외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의 작용(심식心識)에
의해서 창조되며 심식(마음작용)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힌 ‘삼
계유심설三界唯心說’에서 기인한 말로써 유식은 `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인식작용이 가장 잘 발달한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유식론은, 선
업善業에 의해서 증진될 수도 있고 악업惡業에 의해서 퇴보될 수도 있는 인
간의 미묘한 마음자리, 곧 ‘심소心所’의 구조와 작용의 묘처를 규명하고 수행
에 의해서 중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
고 있습니다.
유식사상을 불교 심리학 정도로 이해하면 큰 잘못입니다. 유식학의 목적은
‘마음을 바꾸어 지혜를 얻는다(전식득지轉識得智)’ 즉, 번뇌 망상(내 생각,
고정관념)에 가려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만들어 보는 중생심(어리석음)을 누구에게나 본래 갖추어져 있는 청정심(진
리)에서 발현되는 지혜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리를 모르는
내 생각(무명)을 바꾸어 지혜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8심소心所(식識; 마음자리)가 있습니다.
① 안식眼識(눈으로 보고, 색色)
② 이식耳識(귀로 듣고, 성聲)
③ 비식鼻識(코로 냄새 맡고, 향香)
④ 설식舌識(혀로 맛을 보고, 미味)
⑤ 신식身識(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촉觸)
⑥ 의식意識(뜻으로 생각하고, 법法)
⑦ 말나식末那識
⑧ 아뢰야식阿賴耶識
보통 마음에는 의식, 말라식, 아뢰야식의 세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인식을
주관하는 아뢰야식은 ‘심心’이라 하고, 의지작용과 결의를 뜻하는 말나식은
‘의意’라 하고, 가려내고 판단을 하는 안이비설신의는 ‘식識’이라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심心은 ‘내부의식’ 의意는 ‘자아의식’ 식識은 ‘외부의
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중간의식(제7말나식)에 들어있는 자아의식이란?
(1) 아치我癡: 이것은 자아에 대한 무지無知를 말하며 무명無明이라고도 합니
다. 쉽게 말하면, 자기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를 해체해서 보면 이것과 저것이 모여 이루어 졌을 뿐 어느 것 하나 자기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자성이 없다는(무자성無自性, 무아無我)사실을 모
르는 것을 말합니다.
(2) 아견我見: 자아自我는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로 아집我執이라고도 합니다.
즉, 자기의 견식을 고집하며, 자기 위주의 주장만을 절대적인 것이라 하며,
겸손하게 남의 주장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3) 아만我慢: 아견我見에 의해 설정된 자아自我는 존재한다고 거만하게 우쭐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이미지화된 ‘자신’을 과시하고 의지하면서 그것이
상처를 받았다든지 충족되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4) 아애我愛: 아애我愛는 아탐我貪이라고도 하며 설정된 허상의 자아상을 한
결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제6의식과 제7말나식은 제8아뢰야식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6의식은 나의 의지
로서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이고, 7말나식은 의지로서 조절할 수도 있고 조절할
수 없기도 한 반 의식 반 무의식이기도 한 중간의식이며, 8아뢰야식은 완전한
무의식 즉 초월의식이므로 의지로는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현대
학자들은 8식을 초월의식, 7식을 잠재의식 또는 중간의식, 6식을 의식이라고
하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1식에서 5식까지는 6의식에 포함되어 의식의 앞에 있으므로 전5식前五識이라
하며, 전5식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으로 느끼는 작용만 할 뿐
혼자의 능력으로서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눈은 카메라의 렌
즈와 같아서 단순히 보는 작용만 할 뿐 생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전
5식은 6의식에서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생기는 것입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http://blog.naver.com/yhae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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