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 제 8 강 - *** 개념 바꾸기 (3-1) ***

안계석 2013. 10. 16. 21:04

                                                         - 제 8 강 -

                *** 개념 바꾸기 (3-1) ***

                                                         <양자물리학과 깨달음의 세계>

 

[2] 생과 멸滅(사死)에 대한 개념

 

우리는 생사의 개념을 없던 것이 생겨나고 있던 것이 없어진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이유는 있다는 것은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고 없다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물질이 조건(인연)에 따라서 때가 되면 모이는 것이고 멸한다는 것은 조건에 따라서 모였던 여러 가지의 물질이 때가 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흩어진다(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조각 구름이 생기고 흩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더워지면 수증기가 되어 올라가고 이것이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이면 다시 비가 되어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이 생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나,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경우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변하지 않고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생전生前(과거)에 지은 모든 행위의 결과(업業)입니다.

 

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윤회輪廻를 알아야 하며, 윤회의 주체는 업입니다. 인간은 어떤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온五蘊 즉, 정신적인 요소(수受, 상想, 행行, 식識)와 물질적인 요소(색色;몸)가 화합해서 이루어진 것인데, 이 다섯 가지의 요소를 하나하나 떼어서 보더라도 자성이 없기 때문에 거짓(일시적)으로 화합된 것입니다. 이 정신과 물질을 결합시키는 힘이 곧 업이라는 하나의 세력(에너지, 소립자)입니다. 이 업으로 말미암아 생멸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는 없어지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지은 모든 행위의 결과(업)는 없어지지 않고 더욱 새로운 생을 일으키고 꺼지면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우리들의 생사윤회의 원리입니다.

 

양자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학설로 지구가 속해있는 우주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우주가 여러 개 있을 것이라는 `다중우주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주가 하나만 있든 여러 개가 있든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는 소립자들의 모임입니다. 이 에너지(소립자)의 작용에 의해서 모든 것은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생멸이란 에너지가 인연 따라 모이고(생生) 흩어지는(멸滅) 현상(사건)입니다. 따라서 부분적으로 보면 생멸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본래 생도 없고 멸도 없습니다. 다만 모였다 흩어지는 작용(현상)만 있을 뿐이므로 윤회라는 말도 부분의 문제일 뿐 전체로 보면 본래 윤회라는 것도 없습니다. 윤회라는 말은 개별적으로 볼 때,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것으로서 이 말도 인간이 한 생각 일으켜 만든 개념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몸은 업이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어서, 죽을 때는 입고 있던 헌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고 태어날 때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체득하여 조금의 의심도 없는 믿음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죽는 가운데서 죽지 않는 원리(묘법)를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생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생사가 있는 가운데 그대로 생사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라고 합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말할 모든 원리와 연결됨으로 특히 중요합니다.

 

[3] “백년이라는 시간은 길고, 하루라는 시간은 짧다. 처음과 시작이 있다.” 이렇게 한정지어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과, “눈에 보이면 있다, 보이지 않으면 없다, 공간을 서로 비교해서 넓다, 좁다”라고 한정지어 주관적으로 보던 개념을 무한대의 개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은 어떠한 것을 막론하고 다 ‘내 생각(망념)입니다.

 

1분은 60초, 1시간은 60분, 1달은 30일, 1년은 365일과 같이 시간에 대한 개념이나, 지나간 시간은 과거, 지금은 현재, 다가올 시간은 미래라고 이름 한 것도 인간이 편의상 시간을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시간은 물 흐르는 것과 같아서 한 선상에 연결되어 있을 뿐 시작과 끝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라 할지라도 무한대의 시간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찰나(순간)에 불과합니다. 가령 유리로 만든 컵의 수명이 천 년을 간다고 할지라도 무한대의 시간 개념으로 비교해 보면 컵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는 것이 되어 실질적인 존재의 의미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무상을 통해서 공을 보게 되면(깨닫게 되면) 어떠한 것에도 집작하거나 생각이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가지려하는 욕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상無常(변화, 영원하지 않다. 바뀌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반드시 무한대의 개념으로 바꾸어야 가능하며, 이것은 우리들의 육안肉眼(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안心眼(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심안으로는 무엇이든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소립자도 심안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장작에서 재를 보고 재에서 장작을 봅니다. 얼음, 구름, 수증기는 모두 물이 변한 모습입니다. 얼음에서 물을 보고 물에서 얼음을 볼 수 있다면,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구름을 마시는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간에 대한 개념 또한 내 눈에 보이면 ‘있다’하고, 보이지 않으면 ‘없다’ 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을 진실로 있다는 것으로 개념을 바꾸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심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주관적인 판단 때문인데 죽는 다는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것이므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하여 없다고 하기 때문에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물건도 앞에 있으면 있다고 하나 뒤에 있어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합니다. 물을 끓일 때 김이 올라가는 것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있다고 하나 공기 중에 흩어지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방울은 잠시 모여 있다가 흩어졌을 뿐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결국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생기는 말입니다. 공간에 대한 개념도 무한대로 늘려서 우주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 정도의 크기는 미세한 점에 불과합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http://blog.naver.com/yhaesan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yhaesan(양철곤;慧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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