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 기자가
멕시코의 시골 농촌 부락을 취재하러 갔다. 그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기자는 아침 일찍 시장을 둘러보던 중 자몽 다섯 개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와
팔고 있는 한 남루한 차림의 노파를 보았다.
오전 중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다보니
노파의 자몽은 두 개만 팔리고 나머지 세 개는 그대로 있었다.
기자는 노파에게 가서 동정심을 발휘해
"나머지 자몽을 다 사 줄테니 일찍 집으로 돌아가시지요"라고 말했다.
이때 노파는 단호한 어조로 기자에게 대답했다.
"이 자몽을 당신에게 다 팔고 나면 오후에는 팔 게 없지 않소."
이게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발췌한 까닭은 책의 주제도 그렇거니와, 이 할머니야말로
세속의 상식을 초월한 선자(禪者)가 아니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할머니가 단호하게 취한 선택은 미국 기자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 팔아주겠다는 데 "오후에도 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뭐냐? 오전에 팔다 남은 자몽 3개를
마저 파는 일이었습니다. 자몽 3개 다 팔아봐야 몇 푼 안 됩니다. 미국 기자의 상식은
다 사 준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얼씨구나!' 하고 팔아치운 뒤, 남은 시간에
집에 가서 쉬거나 다른 생산적인 일을 도모하는 게 더 낫다는 데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그 미국기자와 우리 시대의 기본상식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실로 이 할머니의 태도는
골 때리는 비상식적 태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생명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진정한 생활이란 빨리, 많이 팔아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쉬지 않고 활동하는 데 있다'는 신념을 고수하고 있는
이 할머니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이어서 이 일화에 살을 좀더 보탭니다.
'이 노파의 삶이 바로 선적인 삶인 것이다. 멕시코 노파 이야기는 장자나 공자 시대의
옛 일화가 아니다. 바로 오늘의 이야기다. 혜능의 선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팔만대장경도,
정적만이 흐르는 산사의 선방도 아니다. 선은 바로 멕시코 노파의 자몽 보자기 안이나,
농부들이 앉아 쉬고 있는 논두렁 위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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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괜찮아요, 할머니. 날도 어두워지는데 어서 좌판 걷고 댁으로 돌아가세요."
멕시코 할머니의 자몽 3개가 돈이 아니듯이, 강릉 할머니의 20원도 돈이라
말하기 곤란한 액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멕시코 기자나 고향 선배나 모두
할머니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던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이 파가 오전에는 싱싱해서 100원을 받아 마땅했지만,
지금은 시들었기 땜에 100원 다 받으면 벌 받어.
어여, 잔소리 말고 내 거스름돈 20원을 받어!"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멕시코 기자에게 한 방 맞은 것처럼, 제 고향선배 부부도 이 할머니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할머니들이 선자들인지, 각자(覺者)들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보잘 것 없는' '아무렇지 않은' 할머니들이 조용히 우리를
흔든다는 것입니다. 이 이름없고, 남루한 시골 할머니들이 '잘난 효율성의 상식'을 지니고,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 윤똑똑이들을 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골프장을 더 짓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신경질을 내면서 소비를 부추기는 난폭한 제안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 특히 이 나라 잘난 사람들은 이 할머니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분명 있습니다.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원전 : 이은윤선생님의 『육조혜능평전』(동아시아, 2004) 중에서 '혜능선과 소농경제사상' 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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